인간관계가 어려운 사례들
인간관계 어렵죠? 그렇다고 사람들과 담 쌓고 살 수도 없어요. 태어나면서 부터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친구와 지인으로 살아가니깐요. 과거 보다는 혼자살기 좋은 시대인 것은 맞아요. 농경사회나 공업사회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었어요.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만드려면 절대 혼자 할 수 없고, 공장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같이 일해야 월급을 받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그렇다해도 인간관계 속에서 다툼과 갈등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요.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문제입니다.
사례 1
김 부장(58세)은 회사 복도에서 우연히 신입사원 민지(25세)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민지: “아, 진짜 부장님 Old School이야. 엑셀도 못하면서 보고서는 왜 자꾸 수정하래?”
김 부장: (불쑥 나타나며) “민지 씨, 회사에서 어른을 그렇게 험담해도 돼요?”
민지: (당황하며) “아… 부장님. 죄송합니다. 그게…”
김 부장: “요즘 애들은 윗사람 공경할 줄도 모르나 보네.”
민지: (속으로) ‘OK 부머…’
사례 2
동료 A: “이번 프로젝트 대박이야! 내 아이디어가 효과만점이었지.”
동료 B: “뭐? 그거 내가 제안한 거 아냐?”
동료 A: “에이, 넌 그냥 힌트만 줬잖아. 실제로 실행한 건 나라고.”
동료 B: “야, 아이디어가 없었으면 실행은 개뿔. 내 공도 인정해줘야지!”
동료 A: “알겠어. 니 공도 있다는 걸 부장님한테 말해줄게… 10% 정도?”
동료 B: “뭐?! 적어도 50:50이지!”
사례 3
밤 11시, 윗집에서 들리는 쿵쿵 소리에 잠에서 깬 김철수 씨.
김철수: (천장을 향해 빗자루로 쿵쿵) “야! 조용히 좀 해!”
윗집 주민: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
김철수: (문을 열며) “누구세요?”
윗집 주민: “저희 집 바닥을 왜 치시나요? 우리 애기가 놀라서 울잖아요!”
김철수: “네? 애기요? 그럼 애기가 뛰어다녀서 소음이 났단 말씀이세요?”
윗집 주민: “네, 걸음마 뗀 지 얼마 안 돼서… 죄송합니다만 이해 좀 해주세요.”
김철수: (한숨) “아… 그렇군요. 저도 미안합니다.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두 사람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하지만 다음 날 밤, 또다시 쿵쿵 소리가 들리는데…)
흔히 발생하는 인간관계 갈등 상황입니다. 사례 외에도 다양한 갈등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상황에서 매번 싸울 수는 없어요.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기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
문제가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 있을 때 한결같이 상대방의 행동이 어쩌다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더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 입니다. 이들은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기대되는 행동 기준에 호소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동기준이 당연히 상대방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원인은 나의 행동기준을 상대방도 알고 있을텐데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냐 라고 호소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사실 상대방에 이런 호소에 크게 반대하기 보다는 그런 기준에 위배되긴 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이 특별한 상황에서는 설사 어른들을 뒤에서 험담하더라도, 프로젝트의 공로에 대해 의견이 충돌해도, 층간소음 발생 원인이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기분이 좋지 못하더라도,,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든지, 나의 공로를 인정해줘 라고 말하고 싶은 인정욕구라든지,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구실을 댄다는 것 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책에서는 다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툼(quarrelling)이란 상대방의 그름을 밟히려는 행동이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 에 대해 일종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다툼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맙니다. 풋볼 경기의 규칙에 대해 서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을 때, 선수에게 파울을 선언하는 일이 무의미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 혹은 규칙을 ‘자연법(Law of Nature)’ 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이 법칙을 ‘자연법’ 이라고 부른 것은, 굳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색맹이나 음치가 가끔 있을 수 있듯이 이 법칙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른 행동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게 마련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 즉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와 상대방 두 사람 사이에 ‘자연법’ 이라고 부르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게 없다면 갈등이 일어날 수 없어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합의가 있어서 그 기준을 벗어나는 상대방을 발견했을 때 바로 잡으려는 욕구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 직장, 친구, 지인간에 알 수 없는 마음의 불만이 있다면 서로간에 자연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살펴볼 순간일 것 같아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인간관계 간에 다툼과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몇 가지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누구에게나 자연법과 같은 행동기준이 있음을 인정하자. ‘저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같아’ , ‘왜 저렇게 하는 지 이해가 안 가’ 이런 생각들은 갈등을 해결할 수 없어요. 내가 가진 행동기준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행동기준을 상대방도 가지고 있다는 ‘자연법’ 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상대방도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믿는거죠.
둘째, 억지로 강요하진 말자. 상대방이 나와 같은 행동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혹은 감정에 빠져서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다면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될 겁니다.
어려운 내용일 수 있어요. ‘순전한 기독교’ 는 인간의 본질을 알려주려는 책이다 보니 어려운 내용이 많이 나와요. 인간관계를 잘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인간관계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