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닷바람에 실린 눈물의 연대기” – 폭삭 속았수다, 이 시대 부모들의 마음을 건드린 작품

넷플릭스가 2025년 상반기 내놓은 화제작 ‘폭삭 속았수다’를 완주했다. 처음엔 제주 방언 제목이 낯설어 망설였는데, 16부작을 모두 본 지금 이 드라마가 왜 IMDb 평점 9.3점을 받으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는지 깨달았다. 로맨스 드라마라고 했지만, 정작 내 마음에 깊이 남은 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사랑이었다.

애순이 엄마 광례, 자식을 위한 억척스러운 사랑

드라마 초반부터 눈에 들어온 건 애순이 엄마 광례(염혜란)의 모습이었다. 찬 바닷속에서 물질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해녀의 삶을 살면서도, 딸 애순이만큼은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허구헌날 점복 점복. 태풍와도 점복 점복. 딸보다도 점복 점복”이라며 투덜거리는 어린 애순이의 마음 한편엔 엄마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가득했다.
광례가 딸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 부모 세대의 사랑법을 다시 생각해봤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 묵직한 사랑의 무게가 화면 너머로도 전해졌다. 특히 애순이가 서울로 떠날 때 광례가 보인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딸의 꿈을 응원하면서도 보내고 싶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명이를 통해 본 애순이의 모성애

시간이 흘러 애순이가 엄마가 되고, 딸 금명이(아이유)와의 관계에서 또 다른 차원의 부모 사랑을 발견했다. “광례는 애순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며, 금명은 애순이 이루지 못한 꿈이다”라는 평가처럼, 애순이는 금명이를 통해 자신이 포기했던 꿈들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인상 깊었던 건 애순이가 금명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꼬운 당신,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라며 딸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길 바랐다. 이런 대사를 들으며 진짜 부모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응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관식이의 딸바보 면모, 아버지의 다른 사랑

양관식(박해준)의 부성애도 빼놓을 수 없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딸 금명이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100g도 사라지지 않게 했다”는 금명이의 말처럼, 관식이는 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했다.


특히 금명이가 부모님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관식이가 보인 반응은 정말 뭉클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딸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내 아버지의 사랑법도 떠올랐다. 표현이 서툴러도 그 마음만큼은 진실했던 우리 아버지들 말이다.

세대를 이어가는 사랑의 유전자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사랑이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광례에게서 애순이로, 애순이에게서 금명이로 이어지는 이 사랑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각자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내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은 마음, 때로는 지나친 걱정으로 아이를 옭아매고 싶은 마음, 그리고 결국은 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깨달음까지. 이 모든 감정들이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폭삭 속았수다’는 제목 그대로 우리를 완전히 속였다. 로맨스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족 드라마였고, 과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이야기였다. 아마 이 드라마를 본 부모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도 애순이처럼, 광례처럼, 관식이처럼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드라마와 어울리는 추천도서로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권한다. 가족 간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폭삭 속았수다’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좋다.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드라마 속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