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시간을 뒤집어도 놀란의 마스터클래스는 여전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을 처음 봤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2시간 30분 동안 뇌가 풀가동했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총알, 폭발하지 않고 수축하는 건물,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전투씬. 놀란이 던진 이 거대한 퍼즐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들었다. 단순히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정교한 메커니즘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관람을 거치며 비로소 깨달았다. 놀란은 우리에게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해독’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 엔트로피 역행이라는 혁신적 개념을 통해 운명과 선택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한 번으로는 절대 이해 불가, 그래서 더 매혹적인

영화관을 나서며 느낀 첫 감정은 당황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심지어 시간이 앞으로 흐르는지 뒤로 흐르는지도 헷갈렸다. 물리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이도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극장 밖으로 나가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놀란이 던진 거대한 퍼즐을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관람에서야 비로소 이 영화의 정교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장면에서 나타나는 모든 복선들, 주인공과 닐의 관계, 그리고 운명론적 구조가 하나의 완벽한 고리로 연결되는 순간의 전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놀란은 관객에게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해독’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엔트로피 역행: 놀란이 창조한 새로운 시간 개념

테넷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시간여행이 아닌 ‘시간 역행’이라는 개념이다. 과학계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므로 테넷은 시간이 아닌 엔트로피가 역행한다고 설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SF적 설정을 넘어서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놀라운 시도다.


영화 속 ‘인버전’ 기술은 물체의 엔트로피를 역행시켜 시간의 흐름을 뒤바꾼다. 총알이 총구로 되돌아가고, 폭발이 수축하며, 상처가 치유되는 장면들은 시각적 스펙터클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놀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 전체를 통해 탐구한다.

운명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놀란이 이런 복잡한 시간 구조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운명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닐의 말처럼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라는 운명론적 세계관 속에서도, 인물들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는 우리 삶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결과로 현재를 살아간다. 테넷의 시간 역행은 이런 일상의 역설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장치다. 놀란은 복잡한 물리학 이론을 통해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메커니즘 속에 숨겨진 감정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도 놀랍다. 특히 마지막 탈리안 작전에서 순행 팀과 역행 팀이 동시에 진행되는 전투는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두 팀의 협조는 단순한 액션을 넘어 철학적 사유를 자극한다.
하지만 테넷의 진짜 매력은 이런 메커니즘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 감정이다. 닐과 주인공의 우정, 캣과 막스의 모자 관계, 그리고 사토르의 절망적 사랑은 복잡한 플롯 속에서도 영화에 감정적 무게를 부여한다. 놀란은 차가운 논리와 뜨거운 감정을 완벽하게 균형잡아 놓았다.


추천 도서: 이 영화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은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다. 물리학자인 저자가 시간의 본질에 대해 쓴 이 책은 테넷의 시간 개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미궁』도 추천한다. 운명과 선택, 무한히 분기하는 가능성에 대한 보르헤스의 사유는 놀란의 세계관과 놀랍도록 닮아있다.